🎯‘금·은·동+동’인 이유
쾌적하게 보기 Ι 구독하기 2023. 9. 27. 수요일 jks님은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인가요? 전 많이 찍는 편은 아닙니다. 휴대폰 사진첩을 보면, 기사에 쓰려고 찍은 사진, 딸 사진, 카페 와이파이 비밀번호 사진 정도가 전부입니다. 원래도 잘 안 찍었지만, 더 안 찍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대학생이던 2011년 겨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였습니다. 한 달 반 가량 되는 여정에 굳이 세상과 연결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휴대전화를 가져가지 않는 대신 와이파이로만 연결되는 태블릿 피시만 챙겨갔습니다. 즐기진 않지만, 사진을 남기긴 해야 하니까요. 순례길은 신비로웠습니다. 걷는 몇 시간 동안 내내 끝없는 지평선이 펼쳐지기도 했고, 높은 산에 올랐을 땐 '라이온 킹'이 호령할 듯한 초원이 내려다 보이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사진이 취미가 아니라도, 이런 아름다운 순간을 찍지 않고는 못 견디지요. 그래서 하루에 몇 장씩, 풍경이나 길에서 만난 친구들, 마을 사진을 찍어뒀습니다. 그리곤 한국에 돌아와 동생에게 그 사진들이 담긴 태블릿피시를 며칠 빌려줬습니다. 동생이 '동기화'를 한다고 했고, 저는 그게 제가 찍은 모든 사진이 사라진다는 의미인 줄 그때는 몰랐습니다. 따로 옮겨놓은 몇 장을 제외하고 모든 사진은 사라졌습니다. 당시엔 아쉬운 줄 몰랐지만, 십여 년이 지나고 나니 그 '동기화'가 너무 밉고, 동생이 야속하더라고요. 그런데 아내가 "나한테 이미 12년이 지난 얘길 생생하게 얘기해주고 있잖아"라더라고요. 그러면서 "아마 사진이 남아있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머리가 순례길 기억을 더 꽉 붙잡고 있었던 게 아닐까?"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사진을 많이 찍었던 5∼6년 전 유럽 여행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12년 전 순례길 여정은 냄새, 소리, 분위기마저 생생하게 떠오르고 있으니 말입니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 가족, 친구와 행복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