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대신 뻐꾸기

5월 28, 2025

2025. 5. 28. 수요일

"나 한 달 전부터 드럼 배우고 있어." 지난 토요일, 부모님 집에서 오랜만에 만난 엄마가 저녁을 먹던 도중 말했습니다. 별일 아니라는 말투로요. 저는 순간 귀를 의심했습니다. 제가 자라면서 엄마가 뭔가를 배우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드럼이라니요.

사실 저는 엄마가 악기를 배운다면 그게 피아노일 거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피아노 학원을 그만둔 뒤, 제 방에 자리 잡은 업라이트 피아노는 아무도 치지 않는 채로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그 피아노를 버리자고 수차례 말했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는 "언젠가 내가 배워서 칠 거니까 버리면 안 된다"고 응수했습니다.

그렇게 피아노는 조율도 안 된 채 20년 넘게 제 방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피아노 위에는 각종 잡동사니를 담은 수납 바스켓이 올려져 있고요. 지금은 제가 다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지만, 부모님 집에서 독립한 뒤의 일이어서 피아노는 여전히 제 방의 오브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드럼을 배우게 됐냐"고 물으니 단순합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아빠 친구분이 코로나19 이후 폐업한 집 앞 상가 노래방 자리를 임대해 드럼 연습장으로 쓴다고 합니다. 그분의 제안으로 엄마는 매주 한 번 연습장으로 향해 레슨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가격도 시간당 2만원으로 부담스럽지는 않고요.

사실 전 늘 생각해왔습니다. 엄마는 뭔가를 배우기만 하면 잘할 사람이라고요. 학창 시절 공부를 꽤 잘했다는 엄마는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바로 회사에 취업했습니다. 이후 결혼과 함께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됐습니다.

엄마는 종종 "나도 공부 잘했는데, 부모님은 관심이 없었어. 빨리 돈 벌라고만 했지. 대학 갔으면 잘했을 텐데…"라고 말했습니다. 성적표를 확인하진 않았지만, 저는 그 말이 사실일 거라 믿습니다. 생활 속에서 드러나는 엄마의 이해력이나 상황 판단 능력 등이 너무 뛰어나니까요.

말하자면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의 전형입니다. 운전면허도 한 번에 땄고요.(여러모로 대학 나온 아빠보다 더 뛰어날 때가 많아서, 저는 종종 아빠를 놀리곤 합니다)

하지만 엄마에게 무언가를 배우는 건 늘 '나중의 일'이었습니다. 엄마는 한참 어린 저와 동생을 키울 때는 주부로 살다, IMF 이후 자영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는 주말도 없이 매일 아침 8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하는 삶을 20년 가까이 이어왔습니다.

그런 삶에서 배우는 일은 시간과 돈, 정신적 에너지를 필요로 했을 테고, 그래서 더욱 부담스러웠겠지요. 어릴 땐 그런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뭔가 배우고 싶다"면서도, 막상 집에서는 밥을 차리고, 티브이를 보다가 일찍 잠드는 엄마의 삶이 단조로워 보였달까요.

직장인이 된 지금은 이해를 넘어서 존경합니다. 바깥에서는 작은 가게를 꾸리며 성실히 노동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무급 가사노동을 해오면서 나를 먹여 살린 우리 엄마니까요. 엄마가 벌어온 돈, 그리고 엄마의 시간을 빨아 먹으면서 제가 자랐다고 생각하니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 몰려 옵니다.

지난 일요일, 가게에서 일찍 퇴근한 엄마와 한낮의 쨍한 햇빛을 받으며 드럼 연습장으로 향했습니다. 드럼 앞에 앉아 다리를 벌리고 스틱을 잡는 엄마의 모습이 낯설고도 귀여워 자꾸 사진을 찍었습니다. 엄마는 모범생이었던 소녀 시절처럼 차례차례 교재를 넘기며 복습했고, 저는 40분 동안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쑥스러워서 말하진 못했지만, 저는 무언가에 집중한 엄마가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바랐습니다. 드럼을 시작으로 엄마가 앞으로도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즐겁게 살아가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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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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