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이 감춘 것

12월 18, 2025

2025. 12. 18. 목요일

jks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3년 전 여기에 편지를 쓴 적이 있는데, 기억 못 하시겠죠? 오늘은 대타로 나왔습니다. 앞으로도 에디터들 일정에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기면 아주 가끔 등장할 예정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요즘, 저는 허투루 보낸 지난 시간을 조용히 되짚어보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 글이 떠오르더군요. 지난겨울 시드니에 머물 때 썼던 일기입니다.

초등학교 2, 3학년 아이들에게 매일 일기를 쓰라고 가르치면서, 저도 시범 삼아 한번 써봤습니다. 온종일 걷는 여행에 지칠 대로 지쳤을 무렵 제 일기를 본 아이들은 깔깔 웃으며 공감했고, 도시여행을 좋아하는 아내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저를 노려봤지요.

제목: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의 기쁨

새벽에 비 오는 걸 확인하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며 숙면을 취했다. '드디어 비가 오는구나!' 마침내 먼 외출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침 7시. 보통의 하루였다면 아침식사, 세수, 외출용 짐 챙기기, 잔소리에 분주했을 텐데, 오늘은 여유롭게 스트레칭을 하고 홀로 집 밖을 나섰다. 동네 거리를 쉬엄쉬엄 달렸고, 카페에 들러 플랫화이트를 주문했다. '아, 여유로워라!'

기분 좋게도 꾸질꾸질한 흐린 날씨가 주욱 이어졌으므로, 일찌감치 외출은 포기했고 가족들과 함께 동네도서관에 갔다. 가자마자 책상에 엎드려 한숨 자고 나서 맑은 정신으로 책을 읽었다. 오늘도 멀리 외출했다면 이런 꿀잠도, 꿀잠 뒤 상쾌한 독서도 없었으리라.

동네 공원 놀이터엔 생전 처음 보는 놀이기구가 있었다. 두 개의 날개로 도는 대형 바람개비다. 한 날개에 한 명이 앉으면 다른 날개는 다른 한 명이 밀어줘야 한다. 난 아이들과 아내를 한 명씩 앉히고 큰 원을 그리며 신나게 날개를 돌렸다.

그들은 바람개비에 매달린 채 훨훨 날아가는 기분에 흠뻑 빠져 함박웃음을 지었다. 난 그 웃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기쁨'을 보았다. 오늘 같은 날이 있었기에, 우린 외출했던 어제보다 조금 더 '내일의 외출'을 기대하게 되었다. 근데 내일도 비가 오진 않을까? 그게 더 기대된다!

한동안 그때가 그립기만 했는데, 요즘은 조금 아립니다. 시드니 도심에서 버스 타고 30분이면 가는, 전 세계적인 '핫플' 본다이비치에서 벌어진 비극 때문입니다. 지난 일요일 총기 난사 사고로 숨진 무고한 시민들과 그 가족의 무너진 일상을 생각하면, 지금 잠깐의 쉼조차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jks님도 오늘 하루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시간, 느끼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장덕준 유족 제공 CCTV 화면 갈무리

1. 김범석이 감춘 것🔗

김범석 쿠팡 의장이 과거 심근경색으로 숨진 물류 기사의 극단적인 노동환경을 은폐하도록 지시한 정황이 나왔습니다. 어제 쿠팡 청문회 발언만큼 황당합니다.

2. 풍경을 바꾼 상속법🔗

서울 근교 음료와 빵을 파는 대형 베이커리가 2019년부터 부쩍 늘었습니다. 오래 경영한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을 물려받을 때 상속세를 물지 않는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늘린 뒤 벌어진 일입니다. 여러 업종 중 대형 베이커리가 뜬 이유가 있습니다.

3. 징계라 쓰고 보복이라 읽는다🔗

서울시 위탁기관 ㄱ팀장은 자신이 업무 태만으로 징계당해야 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습니다. 그가 회사 비리와 직장내괴롭힘을 신고했기 때문이 아니라면요.

4. 한시간도 못 참아?🔗

지난 4일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협연 중 울려퍼진 휴대전화 소리. 화난 다른 관객들은 성명서를 쓰고 집단소송을 제안합니다. 관객의 공연 방해 행위인 '관크'(관객+크리티컬)는 한국만의 일은 아닙니다.

5. 13월의 월급명세서가 달라져요🔗

이제 수영장·헬스장 이용료도 소득공제 대상입니다. 특별재난지역 고향사랑기부금 공제율은 다른 지역의 약 2배입니다. 올해 바뀐 공제·감면 대상을 확인하세요.

REUTERS 연합

내년에는 고통 없기를

지난 16일(현지시각) 쿠바 아바나 인근 라자로 성지 순례 길입니다. 한 순례 참가자가 라자로 상을 앞세우고 기어가는 중인데요. 쿠바에서 성 라자로는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인물로 숭배됩니다. 최근 심각한 경제위기와 감염병으로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는 쿠바 시민 수천명은 고통의 참배로 행복을 기원했습니다.

아빠 육아휴직자 첫 6만명 돌파

지난해 아빠는 18.3% 늘었습니다. 전체 육아휴직자 중 아빠 비중은 29.2%로 재작년보다 3.5%p 증가했는데요. 역대 최대를 기록한 육아휴직자 20만6226명 중 아빠 육아휴직자는 6만117명으로 처음으로 6만명을 넘었습니다.👉기사보기

생각지 못한 고통이여

소설 '헌치백'의 저자 이치가와 사오와 주인공은 등이 굽은 척추장애인입니다. 소설 속에서 척추장애인은 종이책이 '등뼈가 찌부러지는 고통'을 준다고 나옵니다. 종이책의 문화적 향기를 근심 없이 즐겨온 이에게 충격을 주는 말입니다.👉기사보기

우리가 끊임없이 실패하는 이 뉴스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똑똑한 동물이 인간이 저지른 실수를 해결해 준다는 '매력적인 판타지'가 우리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프로젝트 초기, 스웨덴의 한 공무원은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는 까마귀에게 꽁초 줍는 법을 가르칠 순 있지만, 사람들에게 꽁초를 버리지 말라고 가르칠 순 없는 것 같다."